공채 2기로 KBS 입사, 방송발전위해 바친 35년 카메라 인생
전 세계 오지와 안방극장 누비며 수천여편 제작
미리 정한 유언은 “죽으면 관속에 카메라를 넣어 달라”

"대한민국 카메라맨에게 정년은 없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KBS한국방송 라디오공개홀에서 있은 정년 퇴임식장에서 이병순 KBS사장으로부터 감사패와 꽃을 받아든 김응국 감독(58세. 전 KBS한국방송 영상제작국 총감독)이 던진 한 마디였다.
김응국 감독에게 KBS 한국방송과 카메라는 삶의 전부였다. 지난 73년 공채 2기로 KBS에 입사한 청년 김응국은 이후 KBS의 여의도 이전과 전두환 정권의 방송 통폐합, 광주 사태, 방송민주화투쟁, 문민정부 탄생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영상에 담아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예순을 바라보는 중년, 아직도 웬만한 20대들과 팔씨름을 하면 이길 만큼 힘이 남아돌지만 ‘정년’이란 현실은 그를 정든 KBS한국방송에서 떠나게 했다.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련은 남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상역사에 남을 만한 대작을 만들었더라면...”하는 그의 하소연.
그러나, 그는 이미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 세계 5대 명산과 안방극장까지 두루 섭렵하며 수천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지난 35년 동안 그가 만든 영상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꼭 지켜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거장’이란 칭호를 부여한다.
대한민국 방송 카메라의 ‘마이스터’ 김응국,
“정년이 없다”고 선언한 그의 제 2의 인생을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이 망해도 끝까지 남아있는 조직은 무엇일까요?”
“이건 절대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두고하는 가정이니깐, 기사가 잘못 나가면 큰일난다”며 기자에게 미리 엄포를 놓은 김응국 전 KBS한국방송 영상제작국 총감독이 던진 질문이다.

“KBS한국방송입니다. 대한민국이 망했다는 방송을 해야 되기 때문이죠. 이말은 KBS한국방송은 대한민국과 공동운명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KBS에 바친 삶은 대한민국을 위한 인생이었습니다. 몸은 비록 떠나지만 마음만은 죽을때까지 KBS에 남아있을 겁니다.”

KBS 한국방송 정년 퇴임식장에 선 김응국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알프스의 동상, 중국 오지의 고산병, 사명감으로 견디며 대작 만들어

“남산시절에 입사하여 여의도로 KBS가 이전할 때엔 이전담당반에 발령받아 사무용품 하나까지 직접 챙겼다. 당시 여의도는 허허벌판이었다. 시설도 없고 퇴근하면 칼바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지금도 KBS에 어떤 풀이 있고, 어떤 나무를 어디에 심었는지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다가온다”며 KBS초창기 시절을 회상했다.

김응국 총감독은 이날 따라 유난히 코가 빨갰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세계 5대 명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였다. 알프스의 겨울을 촬영하던 중 코가 동상에 걸렸다. 가까스로 응급치료를 했지만 모세혈관쪽에 문제가 생겨 그후부터 ‘루돌프 코’가 됐다. 사명감으로 일했기에 원망은 절대 안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01년 ‘고선지 장군’특집을 제작할 때 중국 사막지대에서 40일간 카메라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서안에서 출발해 중국의 오지를 횡단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는데 고산병이 걸렸다. 얼굴이 2,3배 붓고 너무 힘이 들어 중도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우리민족의 자랑 고선지 장군의 행적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버텨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특히 “꿀벌의 실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전세계를 돌때는 세계각국의 온갖 종류의 벌에게 다 쏘여봤다. 김응국 감독은 “하마터면 벌에 쏘여 죽을 뻔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벌이 무서웠다. 눈두덩이가 너무 부어 한동안 앞을 볼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방극장의 터주대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KBS드라마는 없다

안방극장에서도 김응국 총감독은 빼놓을수 없는 존재였다.

“당신이 그리워질때”, “바람 불어도”, “가족” 등 일일드라마에서부터 배우 신은경의 데뷔작이었던 미니시리즈 “검은 자화상”, 대하드라마 “이순신” 등 그가 참여한 드라마가 수백여편에 이른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으로 헬리켐(방송용 카메라가 부착된 무선조정용 소형헬기)을 직접 제작해 대한드라마 “이순신”의 제작에 활용하기도 했다.

김응국 감독은 유명작가들과도 관계가 돈독하다. 최인호와 박범신 등 당대의 거장들이 김 감독과 동행하며 대한민국 방송의 수준을 높였다.

90년 초에 “박범신의 아프리카 휴먼기행”이라는 다큐멘터리기행을 작가 박범신과 동행 촬영했다. 무려 3개월 동안 모로코와 이집트, 케냐, 모잠비크, 스와질렌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아프리카 대륙을 구석구석 취재했다.

그는 “아프리카는 너무도 고생해서 잊을 수 없다. 덥고 모기도 많고 말라리아에도 걸렸지만 열심히 촬영하다보니깐 말라리아가 놀라서 도망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감독은 이밖에도 86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대전 엑스포, 2002 한일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국내외 행사도 도맡아 영상에 담았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네델란드 아인트호벤에 입단했을때 그들의 경기를 최초로 영상 취재했다.

또 우리나라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놓고 논란이 일때 그는 직접 알래스카 미국 공군기지를 취재해서 “KBS 일요스페셜”에 방영하기도 했다.

방송은 시청자 욕구를 채워주는 바보 상자, 나는 그 속의 바보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감금까지 당하는 등 어떤 때는 ‘이러다 죽는거 아닌가’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방송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며 “방송을 한마디로 얘기해서 시청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바보상자라면 나는 그를 좋아하는 바보”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을 축약했다.

“내가 죽으면 관속에 카메라를 넣어 달라”

이 말은 김응국 총감독이 미리 정해 놓은 유언이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카메라 감독으로 살고싶다는 그의 염원이기도 하다.

“아직도 더 일할 수 있는데, 인제 카메라를 알 것 같은데...”라며 정년을 아쉬워하는 김응국 총감독, 그는 이제 자신의 분신이었던 KBS를 떠나 밖에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영상사에 남을 대작을 만들기 위해...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 카메라맨에겐 정년이 없기에 앞으로 펼쳐질 제 2의 인생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채고은 기자  choisj@sunda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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