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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장애를 극복한 ‘대구 장애인의 아버지’오경섭 발행인이 만난 인물 - 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 김창환 회장(창진물류 대표)

 '더불어 사는 삶' 강조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사회사업가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나로 매출 200억대 지역 기업 일궈  

 “나 스스로 장애인으로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신앙인으로 살면서 베풀고 나누며 사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지역 내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 온 (사) 대구광역시 지체장애인협회 김창환 회장은 ‘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같은 그의 봉사활동은 물류, 재생에너지, 종량제봉투사업 등의 기업을 운영하며 ‘받은 만큼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 된 것으로, 그는 지역에서 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수호자로서, 역경을 극복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지역 장애인복지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사업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느닷없이 찾아온 저의 중증장애가 돈보다 봉사에 더 전념하게 만들었죠. IMF 때 남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는데 사업이 오히려 번창했어요.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죠.”  장애인에 대한 온갖 비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 번의 장애를 극복한 ‘대구 장애인의 아버지’ 김창환 회장을 본지 오경섭 발행인이 만났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1971년 대구로 왔습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업상 견학할 필요가 있는 공장 방문을 거절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설움도 컸지만 종교적 신앙심으로 이를 극복하며 사업체 운영에 매진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과 2004년엔 뇌졸중과 고관절 부상으로 심한 중도장애를 또 겪었습니다." 

중증장애인인 (사)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 김창환 회장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겪었다. 학창시설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장애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좌절감에 빠져 한때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삶을 포기하고자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장애인과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 의족을 착용한 다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걷고 달렸다. 

“과거 장애인 각 단체들은 비장애인들로부터 불신을 많이 받았어요. 장애인 단체들의 난립과 각종 후원금 및 지원금에 대한 비공개와 불투명한 집행이나 물건 등을 강매한 결과였죠.” 

김 회장은 이 때문에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맡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투명한 협회운영이었다. 김 회장은 취임 이후 정부가 정한 사회복지재무회계규칙에 따른 예산집행과 회계 내용을 연말에 모두 공개해 왔다. 김 회장은 여러 사업을 하다 보면 늘 예산부족에 시달리지만 김 회장은 사비로 충당하기도 한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두고 시행한 사업은 중증장애인 주거개선 사업과 지체장애인 편의시설 대구지원센터 운영이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단체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가 대구에 생긴 지 1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센터요원들과 일본 오사카의 선진화된 시설을 방문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요즈음 법률적인 강제에 의한 수동적인 모습이 아닌,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소비의 주체로 보고,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시설을 대구광역시부터 유니버설 디자인화하면 어떨까? 하는데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사회 인프라 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죠.”

김창환 회장은 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장 외에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 부회장, 대한장애인게이트볼연맹 중앙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대구광역시지부장, 지체장애인편의시설 대구지원센터장, 대구광역시달구벌종합복지관 법인대표, 대구광역시달성군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장, 대구광역시장애인체육회 상임부회장, 남양학교 운영위원장 등 장애인복지의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권을 신장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저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가슴 한쪽이 저려옵니다. 제가 가진 아픔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복지를 위해 앞장 설 수 있었고, 개개인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대변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며 “사업을 통해 얻은 이윤의 일정부분은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사회적 소외계층인 장애인에 대한 복지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때 비로소 장애인의 삶은 변화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창환 회장은 장애학생들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구광역시교육청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매년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저소득중증장애인에게 떡과 제수음식 등을 지원하여 함께 할 수 있는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이 되면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이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계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장애노인을 위한 경로위안잔치를 정기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장애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적인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밖에도 장애인가정에 대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으며, 중증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장애인을 위해 활동지원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활동보조인을 파견함으로써 그들이 욕구를 충족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장애인체육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 사비를 털어 지원

   김창환 회장은 장애인의 건전한 여가활동 기회를 부여하고 사회통합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스포츠 활동의 중요성을 일찍 인지하였다. 장애인 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2004년 대구광역시장애인체육회를 최초로 창립하여 현재의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장애인체육회의 설립 초기 운영비가 없어 사업운영에 많은 지장이 있었으나 사무처운영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사비를 털어 지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대구-북경 정기교류전의 정기적인 개최를 통해 국제적인 장애인스포츠인프라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를 개최하여 IPC공인 세계대회로 발돋움 시키는 등 장애인체육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밖에도 대구광역시 지체장애인 스포츠단을 조직하여 등산, 파크골프, 게이트볼, 휠체어농구 등 다양한 장애인스포츠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생활체육활성화 및 전문체육인의 발굴과 양성을 통해 장애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의욕을 고취시키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참여형 장애인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다”며 “특히 거동이 불편한 장애노인들의 건전한 여가 생활 진작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스포츠 활동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장애인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11년 대한장애인게이트볼연맹을 창설하여 전국의 장애노인을 위해 장애인게이트볼을 쉽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널리 보급하고자 활동을 하고 있다.

김창환 회장은 이러한 장애인 복지 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지난 2008년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국회의장 표창, 보건복지부 표창 등 많은 표창을 받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연 매출 200억대 지역 CEO로 성공한 기업가, 성공한 장애인으로 손 꼽혀

김창환회장은 또 연매출 200억대 지역 기업의 CEO로서, 성공한 기업가, 성공한 장애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친환경 비닐봉투제작업체인 (주)광촉매환경과 친환경 합성수지 재생공장인 (주)창진, 그리고 약 130여대의 윙바디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물류회사인 창진물류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김창환 회장은 ㈜창진물류를 통해 '장애인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 물류회사로 떠오른 창진물류는 그의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1971년 고향을 떠나 대구에 정착한 김 회장은 대한통운에서 근무했다. 그는 "회사에서 다양한 분야를 겪으면서 나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며 "사표를 내고 험난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한 것은 운수업에 선진화를 도입하면서다. 당시 차량의 화물들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럭에 천으로 덮어 사용했던 것을 창진은 윙바디를 설치한 차량을 도입했다.

김 회장은 "90년대 초반 선진국인 일본을 견학하면서 100% 윙바디를 설치한 탑차를 보고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993년 대구경북 최초로 윙바디 차량을 제작, 운영했다"고 말했다. 또 회사는 보관에서부터 하역, 적기 배송 등 선진 기법을 도입해 안전한 물류전문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창진물류가 지역에서 중견 물류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서비스 정신 덕분이다. 회사는 정기교육 및 수시교육을 통해 차량 안전사고 예방, 차량 정비 상태 점검, 운전자 복장 통일화 등 인적 서비스 강화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질 높은 서비스로 고객을 응대한 창진물류는 삼성과 엘지의 제품 운송을 담당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에는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로부터 교통사고방지부문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창진물류는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영역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있다. 모두가 김 회장의 '할 수 있다'는 의지 덕분이다. 

김 회장은 재생공장인 ㈜창진을 2007년 설립, 공업용 폐비닐(폴리에스테르)을 구입해 공장에서 원료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는 사업에 있어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클린운영을 통해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창진은 2010년 ISO 9001:2000을 획득하는 등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그는 또 광촉매를 이용한 종량제 비닐을 만들어내는 공장을 2009년 인수, 아시아에서 유일한 '끈 달린 봉투'를 생산하고 있다. 광촉매환경주식회사인 이곳에서는 친환경제품인 '에코리본 봉투'를 만들어낸다. 회사 관계자는 "대전과 수도권, 경남 지역 등 타 지역에서 쓰레기 종량제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일본 등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창진물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 분야로 확대를 통해 지역에 이바지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물론 지역 사회와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도 끊임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의 정치적 참여 무엇보다 중요 "장애인 권익 대변할 지도자 필요"

(사)대구지체장애인협회 김창진 회장의 마지막 희망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나라, 장애인도 행복한 나라를 꿈꾸고 있다. 그러기위해 그는 장애인의 정치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근래에 장애인지도자들의 의정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대해서는 김 회장은 “단적으로 말해 장애인 당사자들의 정치세력화는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 국회의원 한명이 당선되면 장애인 복지가 백 마디 부르짖음보다 훨씬 앞당겨지는 것이 현실이다”며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지방의회에도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활발히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조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우리는 이제 장애인의 권익과 욕구를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해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선거 때가 되면 장애로 인해 국민의 소중한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투표참여지원단을 운영하여 가정에서 투표장까지 차량을 지원하고 국민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 

김창환 회장은 “내년 대선에서도 장애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한 장애인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장애인의 목소리를 내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대구 장애인의 아버지’에서 ‘대한민국 장애인 권익의 대변자’로 변신해 여의도를 걷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유이다.

오경섭 발행인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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