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우리나라 초창기 TV 코미디계를 이끈 구봉서씨가 숙환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은 1926년 평양에서 출생, 1945년 악극단의 희극배우로 시작해 400여 편의 영화, 980여 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1969년부터 1985년까지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한평생 희극인으로 활동해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로 손꼽힌다.

향년 90세로 고(故) 구봉서의 발인은 29일 오전 6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 성모병원에서 진행됐다. 가족과 친지들이 나와 발인식을 엄수했다.

구봉서는 곽규석, 서영춘, 배삼룡과 함께 1960년대 말~80년대 초 초창기 TV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한국 코미디의 지반을 탄탄히 하는 데엔 그의 공이 컸다. 위트 있는 유머와 가슴 찡한 코미디로 시대를 위로했던 희극계 대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이어지는 '최장길이' 유행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구봉서는 화려한 수상경력을 보유했다. 1992년 옥관문화훈장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연예인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희극인의 날 자랑스런 스승님상,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등을 수상하며 한평생을 코미디에 바친 노고를 인정받았다.

그중 가장 슬퍼하는 이는 방송계 큰 어른 송해다. 송해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후배들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독였다. 그리곤 고 구봉서의 영구차가 병원에서 떠나자 "잘가! 형님"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후배 코미디언들은 "선생님"이라고 애절하게 외치며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구봉서와 송해는 1살 차이 선후배 사이다. 선후배 사이가 엄격한 코미디계지만 두 사람은 그간 변치 않는 우정을 자랑해왔다. '대부' 구봉서가 송해를 다그치면 송해는 "에고고 형님"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를 늘 따르곤 했던 것. 장난기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 남겨둬야 하는 상황. 송해는 마지막까지 구봉서의 곁을 지키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코미디언협회장 엄용수는 "구봉서 선생님이 이렇게 떠나 안타깝다"며 "가장 최고령이자 인기 있고, 존경받는 모범 생활을 하신 코미디언이셨다. 늘 코미디에 전념하시고 다른 곳은 쳐다보지 않으신 코미디계의 아버지, 친구, 위대한 스승님 이었다"고 말했다.

엄용수는 "후배들이 한 달에 한 번 구봉서 선생님을 찾아갔었다"며 "저희가 가면 누가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한 얘기를 하시면서 '좋았다', '자제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씀해 주셨었다"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상했다. 이어 "또 후배 코미디언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축의금까지 보내주시면서 챙겨주시고 지시해 주셨다. 살아있는 전설로 역할을 다 하셨다"고 밝혔다.

엄용수는 "대단하신 우리 스승님이 타계하셨다. 너무 아쉽다"며 "25년 동안 세배를 갔는데, 그 때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후배들에게 3만 원씩 챙겨 주셨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코미디를 생각하셨다. 아프신 가운데도 저희들과 코미디에 대해 얘기하셨고, 재치와 촉이 살아 있었다"며 "대화를 하면 얼마나 웃기던지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엄용수는 고 구봉서가 몇몇 축제에 함께 하던 것을 언급하며 "행사에 가면 선생님이 자신 때문에 후배들이 고생한다고 빨리 가야된다고 하셨었다. 그 때 저희가 더 사셔야 한다고 했다"며 "후배들 생각해서 서늘한 날을 택하신 것 같다. 음성을 들으면 10년, 20년 더 사실 수 있었는데 후배들 고생하지 말라고 앞당겨 영면하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류금숙 선임기자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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