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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부장판사 구속을 보면서!
  • 조승현 총괄사장/대기자
  • 승인 2016.09.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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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가 비위행위로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세상에는 분명 선(善)과 악(惡)이 존재하는 것이며, 선은 악이 있어서 선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악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선은 더 절실해진다.

그러나 선 중에서 절대 악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선·악을 구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법부는 절대 악으로 분류 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국가나 전통, 이런 것들은 사실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고위 공직자들의 임명동의 청문회를 보면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의 위법은 잘 살려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며 그런 사람들 말고 다른 대안은 세상물정 모르는 산골 깊숙이 사는 농민이나 성직자중에서 찾는 것보다 글로벌 국제 감각과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경험한자 중에서 찾는 것을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자위하여 왔다.

최근 언론인 박수민, 홍만표 부장검사,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교육자들의 비리들을 보면서 혼나겠구나 했다. 이런건 정치적사건은 필요에 따라 대의를 위하는 판단하여야 하기에 때로는 법위의 판단을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 역성 혁명가는 성공한 쿠데타는 당대에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고려말 빼앗긴 만주 땅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고 출정한 장군이 위화도 회군하여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먹을 것을 해결한 박정희 역성 혁명가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악을 구분하는 현직 부장판사의 구속은 이 나라에 더 이상의 믿음을 주는 곳이 어디인지 의문이 간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 시작됐다. 썩을 대로 썩은 상류층 사법부의 가증스러운 위선만큼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 조사실과 법정에서 정의를 구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 정의를 찾으라는 것인가 한탄스럽다. 
 
영장 발부 직후 대법원은 “현직 부장판사의 구속 사태에 대해 국민께 깊이 사죄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6일 전국 법원장 회의를 긴급 소집해 김 부장판사 사건의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영장 청구에 이은 구속 소식에 법원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2002년 브로커 김흥수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여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 2003년 금품수수로 하광룡 전 부장판사는 징역 8월, 2008년 손주환 전 부장판사는 조기석방 청탁수수로 징역 10월, 2011년 최민호 전 판사는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재판청탁명목 금품수수로 징역 3년 등 금융인이나 공직자가 1억만 넘으며 3년이 넘는 가중처벌특별법(특가법)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와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고, 대책이라는 것이 변호사 접촉금지 등으로 오히려 청탁금액만 올리는 상황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썩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청탁을 하려는 수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제식구 감싸기라고 떠들지만 제식구가 국민이어야 하지 자기무리들이 제식구라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고시해서 평생 우려먹으려고 하느냐”는 호통이 들리는 듯하다.

사실 김영란법은 검사의 명품 핸드백 사건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결국 법의 시행은 그 당시 이 사건을 터트린 언론인과 아무 상관없는 농어민과 외식업체 등에게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는 법이 되고 오히려 검사들에게 칼자루만 쥐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빈곤국 이디오피아가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돈 많은 나라들보다 앞서고 북한주민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선전하고, 북에서 목숨 걸고 탈북한 북한주민이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사법부는 다른 어떤 부류보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한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는 일벌백계하여 처음부터 청탁수요자가 발생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재판의 먹이사슬을 깨뜨리지 않고는 달라질 것은 없다. ‘현역 전관(前官)’들이 법망을 피해갈 길목을 알려주고 예비 전관들이 독점적 권한을 오·남용 하는 건 ‘전관예우’가 아니라 범죄다. 

눈앞의 현실은 좋은 대학 나오고 조금 더 배웠다는 자들이 법을 사유화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금 몇 만원이 없어 쩔쩔매고, 빚 몇 백만원 때문에 목숨을 끊어야 하는 서민들에게 “사법정의가 살아 있다”는 말은 지독한 농담일 뿐이다. 돈과 권력은 없어도 도덕적 일순 있지 않느냐고 자위하면 되는 일일까. 이건 분명 아니다.

조승현 대기자
전남 영암출생
송원고, 중국공정기술대
동화증권, 상업은행 근무
상업캐피탈, 고려창투 설립
일요주간 주필
일요저널, 선데이저널 총괄사장

조승현 총괄사장/대기자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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