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고령화로 노후 대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개인연금 적립금은 2012년 216조원에서 지난해 말 292조2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문제가 많다. 금융회사나 연금가입자들이 연금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박주영 금융위원회 투자금융연금팀장은 “가입자가 계획적으로 상품을 선택하기보다는 세제혜택이나 판매자의 권유에 따라 연금에 들다보니 상당수가 중도에 해지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세금 혜택이 자꾸 바뀌다 보니 금융회사들도 새 연금상품이 나오면 옛 상품은 사실상 방치해두는 게 현실이다. 관리가 부실한 탓에 연금 가입 후 10년이 지나면 가입자의 43.5%가 중도해지 한다. 가입자의 절반 가까이가 ‘연금 아닌 연금’에 잘못 투자한 셈이다. 
  
금융위는 연금가입자의 노후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개인연금법’을 연내 제정하기로 했다고 30일 발표했다.
  
개인연금법 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존 보험·신탁·펀드 이외에 투자일임형 연금상품의 도입이다. 현재 개인연금 상품은 돈을 맡아 굴리는 기관에 따라 크게 연금저축보험(생·손보사),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자산운용사)로 나뉜다.
  
일임형 개인연금은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 상품인 랩어카운트처럼 금융회사가 폭 넓은 재량권을 갖고 연금을 굴리는 상품이다. 투자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델포트폴리오를 고르면 거기에 맞춰 자산관리를 해준다. 
  
이와 함께 한 금융사에서 가입한 복수의 개인연금 상품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개인연금계좌가 생긴다. 박주영 팀장은 “가상의 관리 계좌인 개인연금계좌를 통해 다양한 연금상품의 가입과 관리, 기여금 납입, 연금 수령, 세제 인센티브 등의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의 연령대와 상황 등에 따라 펀드내 자산배분을 자동으로 해주는 자산배분 펀드도 앞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연금법에 근거규정이 명확하게 마련되기 때문이다. 자산배분펀드는 하나의 펀드에서 지역·국가별, 자산별, 투자전략별로 다양한 펀드에 부산투자하고 시장상황에 따라 투자비중을 조절하는 재간접펀드의 일종이다.

투자자는 상품을 고르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좋다. 안창국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 사전에 사업자가 설계한 상품으로 자동적으로 운용하는 디폴트 옵션이나 자산배분펀드 등 포트폴리오 구성과 운영 기능이 내재된 연금상품이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자산배분펀드가 미국의 목표시점펀드(TDF·Target Date Fund)다. 이 펀드는 근로자의 은퇴시점을 목표시점(Target Date)으로 잡고 연령에 따라 운용방법이 자동으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TDF 2025는 2020~2025년 은퇴자를 위한 펀드, TDF 2030는 2025~2030년 은퇴자를 위한 펀드다.
  
미국 확정기여형(DC) 펀드시장에서 TDF 펀드의 규모는 2008년 1150억 달러(6.7%)에서 2013년 4380억 달러(12.2%)로 급성장했다.
  
라이프사이클펀드도 자산배분펀드로 분류된다. 이 펀드는 은퇴까지 기간이 긴 경우에는 주식투자의 비중을 높이고 시간경과에 따라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자산을 굴려준다.
  
금융위는 연금상품과 관련해 전문가의 자문을 더 쉽게 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연금이 장기상품인 만큼 상품 비교와 상품 선택 등을 위해 전문가 조언이 필요하지만 자문비용 부담 등으로 자문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개인연금 가입과 운영과 관련해 독립자문업자(IFA)의 자문을 받을 경우 자문비용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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