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랑 그린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도’ 달 뜨는 영암 ‘월출산’ 달 지는 영광 ‘낙월면’….

동양과 서양의 달 생각

한국 등 풍요의 상징…어둠속에서도 고고히 빛나 서양, 늑대 부르고 괴물 모으는 괴기스러운 존재

음력 8월은 풍요의 달이다.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들녘은 황금빛으로 넘실거린다.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달은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달을 보며 물때를 맞추고 날씨를 짐작했다.

초승달로 시작해 보름달을 지나 다시 기우는 모습은 사람의 생애를 닮았다. 생성, 성장, 소멸을 반복하는 달은 모든 생명의 상징이었기에 우리는 달을 동경하고 숭배하고 거기에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한가위의 ‘한’은 크거나 많다는 뜻이다.

정월 대보름의 ‘대’와 통한다. 12달 뜨는 달 중에 그해 첫 보름달과 중추절의 보름달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정월에는 부름을 깨물고 달집을 태우며 개인의 건강과 한해 농사를 기원하고, 중추절에는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과일로 차례를 지내며 풍요에 감사드렸다.

초승달 아래 은은한 달빛 속에서 만난 남녀가 사랑을 속삭인다.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과 등불을 든 남자. 이슥한 시간에 남의 담벼락 아래에서 만난 두 연인은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가진 것일까.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이야기다.

달밤의 은근한 만남, 우리의 사랑방식을 담았다. 이 그림은 국보 135호로 지정될 만큼 역사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작 혜원은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달을 숭배한 민족답게 달을 붙인 지명도 한 두 곳이 아니다.

달이 뜨면 월출이요, 지면 낙월이다. 전남 영암 월출산(月出山)과 영광 낙월면9落月面)이 바로 그곳이다. 지리산 기슭에는 달빛을 끌어안는다는 인월면(引月面·전북 남원시)도 있다.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는 원래 월성(月城)이었는데 모양이 반달과 닮았다하여 반월성 혹은 신월성이라고도 불렸다.

벽에 거는 달력이 없던 시절, 달은 말 그대로 밤하늘의 ‘달력’이자 ‘시계’였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태양빛을 받아 반사한다. 그래서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선조들은 날짜를 헤아렸다.

달 전체가 빛을 받으면 망(望), 즉 보름(15일)이다. 사라져 보이지 않으면 29∼30일인 삭(朔)이다.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날을 한 달의 첫날로 잡는다. 초승이다. 눈썹처럼 고운 초승달을 시작으로 달의 크기를 보며 날짜를 가늠했다.

뿐만 아니라 뜨고 지는 위치도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의 변화만으로는 날씨의 변화를 알기 힘들다. 그래서 농사짓는 시기를 알 수 있도록 24절기를 만들었다. 절기력은 날씨와 자연의 변화를 읽는데 큰 도움을 준다.

보통 음력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든 양력이다. 우리 달력은 음력과 양력을 함께 쓰는 ‘태음태양력’인 것이다. 그 중 음력은 농사시기를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입춘이 음력 설보다 빠르면 꽃샘추위가 물러가지 않고 서리가 내린다거나 유독 음력과 양력의 편차가 심하면 농사일정을 앞뒤로 조정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릴 적 할머니는 달과 별이 된 남매이야기로 우리를 재웠다.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고 어린 남매도 잡아먹으려 했으나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떨어져 죽은 호랑이의 피 때문에 수숫대가 붉어졌다고 일러 주었다. 중국에서는 항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활의 명수 예의 아내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로 도망을 갔다. 거기서 그녀는 두꺼비로 살았는데 달을 먹어대는 바람에 이지러지거나 일식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일본에는 ‘가구야히메’ 이야기가 있다.

대나무 숲에서 발견된 예쁜 여자아이가 노부부의 딸로 살다가 다시 달나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어느 나라나 달은 상상력의 보고였다.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다. 밝고 넉넉한 달. 풍족하여 거지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시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가위만 같아라’는 이 풍요에서 나온 말이다.

해는 어둠을 물리치지만 달은 어둠속에서 고고히 빛난다.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조차도 끌어안는다. 서양에서의 보름달은 늑대를 부르고 괴물을 모으는 괴기스러운 존재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

풍요로운 달도 이지러진 시절이 있었으니 세상사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삭의 시절이 지나면 다시 눈썹처럼 고운 초승달이 되었다가 어느새 한가위 보름달로 떠 만 천하를 비출 날이 올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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