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경제 경제종합
경매 없애니 농산물 가격 안정

'식탁 물가'가 올해도 심상치 않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작년 5월 초 2700원대였던 것이 올해는 4000원대로 48%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마늘 값은 7600원대에서 1만1700원대로 50% 넘게 상승했다. 반면 오이는 7600원대에서 6100원대로 20%가량 하락했다. 식탁 물가를 결정하는 먹거리 가격이 해마다 폭등에 폭락을 거듭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먹거리 가격이 불안정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경매제를 기반으로 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꼽히지만, 수년째 제도 개선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선진국들의 농산물 거래·유통구조를 현지 취재를 통해 분석하고 국내 농산물 유통시장의 문제점과 개선점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프랑스 파리 남부 헝지스 도매시장. 인구 1800만명인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파리 수도권)'에 먹거리를 공급하는 이곳은 이른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농산물을 실어온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기차역에서는 농산물을 가득 싣고 온 기차들이 다시 농산물을 싣고 떠나기 위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선 철도로만 연간 200만t의 농산물이 운송된다.
 
도매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소비자들 구미에 맞게 개별 포장된 색색의 과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곳 일꾼들은 지게차를 끌고 다니며 과일과 채소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다. 한국 도매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이곳에는 경매장이 없다는 점이다.
 
헝지스 시장은 1969년 파리 중심부에서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헝지스 시장은 프랑스 전체 농산물 중 20%가량이 거래되고 있으며, 연간 90억유로(약 11조7000억원) 자금이 오가는 프랑스 최대 도매시장이다. 1200개 회사와 근로자 1만2000명이 이곳에서 업을 이어가고 있다. 헝지스 시장 농산물 구매자들은 일반 소매상이 50%, 급식 등 식자재유통기업이 35%, 대형 슈퍼마켓이 15%를 차지한다.
 
헝지스 시장에서 농산물은 경매 방식이 아니라 농가와 도매상인 간 협의를 거친 수의 거래 방식으로 거래된다. 이곳에서도 한때는 경매가 주요 거래 방식 중 하나였지만 산지 농가와 유통업체가 규모화되면서 굳이 경매를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다.
 
유통업체들의 '바잉파워'에 눌린 농가들이 불리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경매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국내 전문가들 주장이지만, 헝지스 시장에서는 특별한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산지 농가·유통업체 간 '힘의 균형'이 맞아떨어져 투명한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농산물 수급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프랑스 정부기관 아그리메르(AgriMer)의 프랑크 르메이트르 국장은 "농가와 유통업체들이 각각 대형화되면서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경매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농산물 거래 가격이 근거 없이 책정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주요 농산물 200여 품목 가격을 매일 공개하면서 거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농산물 가격은 산지와 각 지역 도매시장 등 130여 곳의 가격을 종합해 최고가와 최저가, 평균값을 집계한다. 그뿐만 아니라 운송비와 관련된 가격 또한 고지된다.
 
도매시장에서 농산물 구매자들은 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산지 농가와 자유롭게 가격을 협상한다. 가격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산지나 구매자들 모두 중요한 자료로 인식한다는 게 헝지스 시장 측 설명이다. 다만 도매시장 상인들이 농산물을 산지에서 매입한 가격보다 더 낮은 값에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시장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플로랑 드 생뱅생 헝지스시장 국제관계 담당은 "산지와 도매시장 가격, 운송비 등이 미리 고지되고 도매상은 이를 고려해 산지와 협의를 거쳐 가격을 결정한다"며 "그로 인한 문제는 아직까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곳에서도 가격 급등락은 있다. 최근에는 오이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정부가 수급량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3~4년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격 등락 폭을 분석한 뒤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대응하는 것이 시스템화돼 있다.
 
다만 가격이 오르기보다는 내려가는 부분 때문에 대응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이곳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매 거래가 아닌 수의 거래가 농산물 가격 등락 폭을 축소시키는 경향도 있다.
 
르메이트르 국장은 "경매가 사라지면서 전체적인 농산물 가격이 안정된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수의 거래가 유통 단계를 축소시키면서 산지와 구매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측면도 있다. 경매를 진행하려면 농산물을 경매지까지 운송하고, 경매를 거친 뒤 다시 경매지에서 소비지로 운송하는 절차가 소요된다. 자연히 운송비와 경매수수료 등 비용이 추가로 들고, 그에 걸리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다.
 
르메이트르 국장은 "시장 참여자들의 대형화로 참여자가 줄었기에 경매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시장 참여자들 간 협의를 거쳐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산지 농가와 도매상 모두 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데이저널  sundaykr@daum.net

<저작권자 © 선데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