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있어서 10월의 마지막 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특별한 기념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절도 아닌 10월의 마지막 밤은 다른 날에 비해 많은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그런 날이 아닐까 싶다. 

사랑과 추억, 낭만과 이별로 대변되는 10월의 마지막 밤! 이날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어디서 왔으며, 누가 알게 해주었을까? 그것은 바로 ‘잊혀진 계절’의 주인공 ‘이범희’ 작곡가다.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작곡가 ‘이범희’ 편이 지난 10월17일 녹화돼, 10월의 마지막 밤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이번 주 토요일인 10월29일 저녁 06시05분에 방영 된다. 

계절은 잊혀져도 노래는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전설, 제275회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작곡가 ‘이범희’ 편으로 꾸며졌다. 뮤지컬배우 남경주를 비롯해 가수 김현성, 손호영, 임정희, 레이지본, 디셈버, 우주소녀 등 총7팀이 출연해 각자 개성과 특색에 맞게 우승을 향한 경쟁을 벌였다. 

‘이범희’ 작곡가는 명문 서울대학교에서 정통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다. 애절한 멜로디로 80년대 가을을 촉촉이 물들인 히트 작곡가다. ‘이범희’ 작곡가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적인 것에 도입시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그 결과 '독백,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약속, 종이학, 눈물의 파티, 잊혀진 계절, 공부합시다, 들꽃, 민들레 홀씨 되어, 첫눈이 온 다구요, 고독, 서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히트 제조기 작곡가하면 단연 ‘이범희’ 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니 1980년대 뿐 아니라 ‘이범희’ 작곡가는 우리 가요사의 大작곡가로 기록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땅에 발라드라는 말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세계적인 가요제에서의 수상은 물론 한국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곡가다. 

또한 새로운 연주가들도 많이 발굴했다. 기타를 연주하는 김광석, 건반을 연주하는 변성룡, 드럼을 연주하는 배수연 등 ‘이범희’ 작곡가는 과감하게 신진 연주자들을 녹음에 기용했다. ‘이범희’ 작곡가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이며, 작곡가였던 김영광 씨의 곡을 편곡해주기도 했었다. 편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대중음악을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은 고고나 디스코로 편곡되어 새로운 감각으로 세계를 강타했다. 

어쩌면 오늘의 대중음악은 편곡에 의해 좌우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디스코 열풍으로 모든 곡마다 디스코를 도입했던 시재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범희’ 작곡가의 음악은 리듬과 선율이 조화를 이뤄 입체음향을 만들었다. ‘이범희’ 작곡가는 “우리 귀에 듣는 것만이 소리는 아니다. 귀로 들을 수 없는 주파수를 끄집어 밑바닥에 깔아 놓으면 그 소리는 비록 들리지 않지만 우리를 감동 시킨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작곡가 ‘이범희’의 간판은 우리 가요계에 쉽게 어필되었다. 그는 1982년 가수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의 히트로 일약 최고의 인기작곡가로 부상했다. 그 이후 장재남의 ‘서울’,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임병수의 ‘약속’, 전영록의 ‘종이학’, 혜은이의 ‘독백’, 최백호의 ‘고독’, 윤시내의 ‘공부합시다’, 조용필의 ‘들꽃’,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이정석의 ‘첫눈이 온 다구요’ 등 계속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양산했다. 

지금도 왕성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범희’ 작곡가는 인기절정의 대중가요들을 쏟아내며, 1980년대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고 있다. 정식 발표되어 세상에 알려진 노래만 600여 곡이 넘는다. 인기가요 20순위에 한꺼번에 10개 이상이 오른 적도 있었고, 1983년 KBS FM가요광장에서 100곡의 히트곡을 선정하였을 때, 그중에 작곡가 ‘이범희’의 곡이 77곡이나 포함되기도 했다. 

어렵고 고단한 시기였던 70년대가 끝나고 80년대는 ‘뭔가 좀 좋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시기가 바로 80년대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철권통치 아래 암울한 시기로 접어든 칠흑 같은 어둠처럼 그렇게 80년대가 시작되었다. 정작 사람들은 80년대를 시작하는 남다른 의미를 찾기도 전에 군사정권에 의해 철저히 난도 질 당하는 아픔과 갈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학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연기로 자욱했으며, 용공분자색출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신세를 져야하는 일이 80년의 새해가 밝아오면서 더 많아졌다. 당시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기를 꺾기 위해 국풍81을 만들었다.

국풍81은 1981년5월28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대규모의 문화축제로 한국 신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주관한 큰 행사로 비춰졌으나 문화축제라는 외관상과 달리 철저히 군사정권에 의해 기획 제작된 의도된 행사였다.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5․18광주민주화항쟁 1주년을 맞아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한 광주에 쏠릴 국민의 관심을 잠재우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했다. 이에 전두환 군사정권은 제5공화국헌법에 규정된 ‘민족문화의 창달’을 앞세워 대규모 문화행사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국풍 81이다.

1979년 동양방송에서 주최했던 제1회 전국대학생축제경연대회를 1980년 언론통폐합이후 KBS로 옮기면서, 제2회 행사를 추진하려던 참에 당시 청와대정무1비서관 허문도의 지시로 소박하게 진행되던 축제가 국풍이라는 대규모 행사로 바뀌게 되었다. 청와대정무1비서관 허문도는 김지하, 김민기, 임진택. 채희완 등을 포섭하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고, 결국 자신의 모교였던 서울대학교졸업생들을 모아 행사에 참가토록 했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청년의 열정과 의지의 힘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여의도광장에서 5일간 밤낮없이 행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행사가 열리는 여의도 일대는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행사기간 동안 내내 야간통행금지도 일시 해제되었다. 

그때 행사에 동원된 인원만 해도 16만 명이었고, 5일간 행사를 보기 위해 여의도를 찾은 인원은 무려 1천만 명에 달했으며, 대학생주도의 참여와 민속 문화를 널리 알리려는 기존의 취지와 달리 참여자의 1/3이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민속 문화보다는 야간에 진행됐던 가요제가 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

바로 이 가요제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게 만들었던 이용이라는 가수가 등장한다. 1957년생인 가수 이용은 국풍81 대학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가수로 데뷔한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출전한 82년 MBC대학가요제에 출전하여 부른 노래가 ‘잊혀진 계절’로 ‘이범희’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 가수 이용을 당대 톱 가수에 올려놓은 곡이 바로 ‘잊혀진 계절’이다.

그러나 이곡은 원래제목이 9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했다가, 이곡을 만든 ‘이범희’ 작곡가가 음반 발매 일정이 늦춰지는 바람에 가창력이 좋은 이용에게 제의하게 됐고, 작은 촛불 하나와 와인 한잔, 그리고 마주앉은 연인들의 사랑이 잘 어울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잊혀진 계절’로 제목을 바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알려진 ‘이범희’ 작곡가의 ‘잊혀진 계절’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가수 이용을 당대 최고의 가수인 조용필과 쌍두마차로 견인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국민가요로 ‘잊혀진 계절’이 손색없다는 말이다.

암울한 시대에 짓눌려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서정적인 노래 ‘잊혀진 계절’은 그렇게 자리잡아왔고,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노래에 등장하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각자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들 가슴 속에 깊숙이 남아 있다.

‘이범희’ 작곡가는 10월을 대표하는 국민적인 노래로 '잊혀진 계절'이 꾸준히 사랑 받는 것에 대해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가사와 피아노 전주에서 오는 가을분위기를 물들이는 곡, 가사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도 없이 아주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한 노래 등 여러 가지가 하나가 돼 이렇게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장열하게 대지를 향해 쏟아지던 뜨거운 여름이 가고, 짧은 가을의 계절이 저만치 물러 갈 즈음, 계절의 길목에서 만나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기다. 풍성한 나뭇잎으로 옷을 입었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흔들리는 갈대처럼, 몸 하나 덩그러니 싣고 떠나는 기차여행, 이 모든 것이 잘 어울리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감성적인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작곡가 ‘이범희’의 ‘잊혀진 계절’ 노래를 들으며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저작권자 © 선데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