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율동이 정서 속에 들어오면 이 세상의 사물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무정한 것이 없고, 죽은 사물이 없다고 했던가. 이른바 만물유생(萬物有生)이라 했다. 

이동순 시인의 시집 ‘마을 올레’에서 시인은 삶의 이면에 침묵하고 있는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퇴락해가는 농촌공동체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꽁꽁 감춰두었던 내밀한 삶의 ‘내력들’이었다. 

시인은 여기서부터 상징과 비유에 의한 시적언어가 생겨난다. 그것들은 '행복'이라고 말해질 것들이 아니었다. 마을공동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크고 작은 상처의 얼룩이자, 아픈 기억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감춰두었던 내력들을 시인은 마음의 눈(직관력)으로 보고 정(情)을 운문에 실어 퍼내면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서정시로 오롯이 표현하였다.   

이동순 시인은 계명문화대 특임교수의 이력에 여러 직함들로 빼곡하다. 모두 재능을 따라서 붙여지다 보니 여러 개가 된 직함이지만 그가 평생 매달린 것은 시(詩)다. 

신춘문예 등단도 시였고, 그동안 ‘개밥풀’, ‘물의 노래’, ‘미스 사이공’ 등 무려 15권의 시집을 펴냈다. 민족서사시 ‘홍범도 10권을 포함하면 전체 저서 54권 중 절반이 시집인 셈이다. 

이번에 펴낸 이동순 시인의 ‘마을 올레’ 시집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된 ‘마왕의 잠’으로 문단에 등단한 지 44년 만에 16번째 시집을 펴낸 것이다. 

이동순 시인은 방송프로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시작(詩作)을 해왔다. 이동순 시인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삶의 이력과 풍경을 담백한 시어로 풀어왔다. 

특히, ‘마을 올레’ 시집은 대구 KBS TV ‘행복발견’의 ‘마을 올레’ 진행자로 다니면서 떠오른 시상들을 틈틈이 정리한 시편들이다. 

시인은 “15개월 동안 63곳을 매주 탐방하며 시를 생산해냈다”며, “이번에 발표한 58편의 시편들은 그동안 달려온 발자국의 장엄한 기록"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텅 빈 농촌, 노약자들만 남아 있는 마을회관에서 현지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속에 갈무리된 이야기를 들었고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온 민초(民草)들의 사연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방송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 뒷좌석에서 시인은 취재 단상(斷想)으로, 애잔한 감동을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58편의 시가 ‘마을 올레’ 시집에 오롯이 담기게 된 것이다.

경북 김천 출신인 시인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동순 시인은 시를 비롯해 모든 글쓰기 배경에는 어머니가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시인의 마음 속 언저리에는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깊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정호승은 “이동순 시인의 시집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며 “시에서 배어 나오는 모성의 향기가 당신의 인생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이동순 시인이 이번에 펴낸 ‘마을 올레’ 시집 가운데 ‘목화다방'의 시편은 예전에 보아왔던 요즘은 점점 사라져 가는 풍경을 서정적 이미지로 극화함으로써 감동으로 다가온다.

‘목화다방’
                                           이동순 시인
목화다방을 아시나요 
상주 은척 면소재지 장터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숨어서 빠끔히 내다보는 
간판 하나가 걸려 있는데요 
거기 쥔 마담은 
한 자리에서 사십 년 넘도록 
시골다방을 지켜 왔대요 
봄바람 가을비가 몇 번이나 지나갔나 
어느 틈에 회갑을 넘겼다며 
배시시 웃는 마담 눈가에 
잔주름이 오글오글 돋아나네요 
-하략-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사물과 이야기들은 이동순 시인의 시(詩)소재가 된다. '목화다방'에서는 1960~70년대 도회지 다방의 아날로그 감성을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성찬이 형제’에서는 이제 일상이 돼버린 다문화가정의 일상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인은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고향을 복원시키고 풍속을 재현했다. 잊혀져 가는 우리의 문화와 정신적 유산까지 현재화시켰다. 시인 박성우는 "시인의 발품과 가슴과 맑은 눈이 아니었다면 사라질 귀한 역사문화를 시인의 맑은 시심(詩心)으로 길어 올렸다"고 평가했다.

이동순 시인이 기록한 ‘사무치는’ 내력들은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가 남긴 상처들이다. 산업화가 부른 이농현상일 수도 있고 고령화로 인한 인간소외일 수도 있다.

'자두 꽃’
                                       이동순 시인
흘러간 날 
남의 집 머슴살이하느라 
가슴이 썩은 박속처럼 내려앉았다던 
불쌍한 우리 영감님

객지 사는 막내딸 
어제도 왔다가 같이 누워서 
갈고리같이 휘어진 이 어미 손 잡더니

제 뺨에 부비며 서럽게 웁디다 
자두 꽃은 만발했는데 
저는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영감님 사진 쓸고 또 쓸고 어루만지다 
기어이 그 위에 눈물 떨굽니다
-전문-

‘자두 꽃’의 꽃말은 ‘순백, 순박’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면서도 자식들만큼은 훌륭하게 키워보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위의 시는 2연과 3연으로 한 편의 시가 완성되어 있음을 본다. 

이제 자식들이 다 성장해 살만하니까, 고생만 했던 아버지는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두 꽃이 만발한 풍경 속 연로한 어머니와 막내딸이 정(情)을 나눌 때며 고생만 하다 떠나간 영감님(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해보려는 직접대상이었음이 시인의 의도로 드러난다.   
       
그 상처들은 어떤 식으로든 치유되고 위로되어야 한다. 시인의 소명은 침묵하고 있는 상처들의 내력을 낱낱이 들어주며, 그것들의 아픔을 따뜻한 시어로 치유하고 있다. 

그 무엇을 노래하든 시에서는 구원의식(희망)을 보여주어야 건강성이 회복된다. 이것이 곧 자기 정체성이다. 이것이 시인의 진실이며 정신이다.  

이동순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가요 100년사를 훤하게 꿰고 있는‘대중가요의 전설’이다. 거기에다 감동적이고 훌륭한 아코디언 연주솜씨에 레퍼토리만 500곡이 넘고 소장하고 있는 악보 LP, SP도 몇 수레는 된다고 한다.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마을 탐방 때마다 (어르신들과) 장구와 아코디언으로 신명을 나눴다’고 적고 있다. 이때 나눴던 가락이 문자가 되어 시집을 차곡차곡 메워 갔던 것이다. 이동순 시인 ‘마을 올레’ 시집 153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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