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로 9년 만에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에서는 벌써부터 당권경쟁이 시작된 듯하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당권도전여지를 열어놨는데, 정우택 원내대표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바른정당 탈당의원들의 복당을 일괄적으로 허용했던 부분을 문제 삼으며 견제해왔었다. 

지난 5월 4일 미국방문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귀국일성과 비슷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정국구상에 몰두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자유한국당의 신임지도부를 선출하게 될 7.3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도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터였다. 대선 이후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다른 대선후보들과 달리 그는 SNS를 통해 국내정치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존재감을 부각시켜왔다. 이른바 'SNS 정치'로 명명되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공세를 취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친박계를 겨냥하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그리고 바른정당에게 각을 세우는 것이 그 세 번째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이를 통해 무너진 보수 세력을 일으켜 세울 적임자가 자신임을 지지층에 강조하고, 당권경쟁과 보수적자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어제(4일)귀국했는데, 패장이 귀국하는데, 환영하러 공항에 나오신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의 기치를 지키는데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약 한달 여 동안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보여준 전략적 행보를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와 친박·바른정당 때리기'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궤멸 위기에 빠진 보수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실제 보수층 사이에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대중 선동력을 갖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위기에 빠진 자유한국당을 재건할 인물로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열기가 뜨거웠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귀국풍경 역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5월 4일 인천공항은 지지자들의 환영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에 고무된 듯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다음날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그는 "패장이 귀국하는데 환영하러 공항에 나오신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마음 둘 데 없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대선 패배에 대해 사죄드리고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데 함께 하기로 약속했습니다"라는 소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는 본격적으로 정치행보에 나설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반면, 일부 친박과 중진의원들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귀국하자마자 라디오에 나와 “우려 된다”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출마에 대해 당 내부분위기는 반반이다”라며 “나는 많이 우려한다. 강한 야당은 큰소리만 친다고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홍문종 의원도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당 대표가 된다면 자유한국당은 통진당이나 정의당처럼 지지율 3~4%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대선득표 24%도 홍준표 후보를 좋아해서 찍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최근 라디오 나와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미국에서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지 않았나”라며 “당권에 도전할 것인데 국민과 당원이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경원, 홍문종 의원 모두 당대표보다는 원내대표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문회 정국에서 정우택 원내대표가 상처를 입으면 교체론이 대두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현충일인 6일까지 쉬고 7일부터 영남지역을 방문해 지지자와 지역의원 등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 측에선 직간접으로 원유철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설득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선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당권도전을 시사했다고 해석한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 측은 "시기상조"라며 부인했지만, 지난 제19대 대선에서 보수표심을 결집해 2등을 한 것을 감안할 때 당권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철우 의원은 지난 제19대 대선이 끝난 후 "후보가 독특한 기질 가진 보수결집능력 가졌고 보수들이 막판에 결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견제도 만만치 않다.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당무우선권을 앞세워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을 복당 시킨 것에 대해 "재논의하겠다"고 했었다. ‘당무우선권’이 당헌의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당권경쟁을 놓고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정우택 대행, 친박 진영 간에 물밑 당권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비박계 중진의원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 식으로는 당을 개혁할 수 없다"며, "신 보수 운동을 벌이겠다"고 주장했다. 

어떻든 자유한국당은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7.3 전당대회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구상 중인 '홍준표식' 보수재건을 위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을 '꽉' 잡고 있는 친박계의 권위와 아성을 무너뜨리고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면 그가 천명하고 있는 보수재건의 당위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관건은 친박계의 막강한 조직과 세를 홍 전 지사가 감당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바른정당 창당으로 인해 당내 친박계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당내 권력구조가 기존의 '친박-비박'에서 '친박' 하나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고민은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계파와 조직이 탄탄한 친박계를 상대하기가 벅차다는 점이다. 여기에 친박계와의 정치적 타협을 이뤄낼 가능성도 희박하다. '바퀴벌레' 논쟁에서 드러나듯 둘 사이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당 대표가 된다 해도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바른정당과의 보수적자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부터가 미지수다. 국정농단사건과 대통령탄핵을 거치면서 한국당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층이 상당수 이탈해 바른정당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은 TK지역과 충성도가 높은 60대 이상의 보수층을 제외하면 지지기반이 급속하게 얇아진 상태다. 두 당 사이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최근의 여론조사결과는 자유한국당의 잠재적 불안요소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를 향한 당 안팎의 우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결국 정당쇄신과 혁신으로 모아진다. 구시대의 관성과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라는 것이 탄핵정국에서 확인된 민심이었다. 

그러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기존의 정치문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해묵은 진영논리와 색깔론으로 분열을 시도하는가 하면, 빈약한 근거와 논리로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동원해 사정정국을 조성할 것이라는 주장은 양심이 있다면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몰염치한 행태다. 시대착오적인 사정·공안정국을 부활시켜 야당인사를 탄압하고, 정부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온 건 다름 아닌 구여권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외면하는 이유가 보편적 상식과 가치를 허무는 기득권자들의 구시대적 정치행태 탓이었다는 사실을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자유한국당 정치지도자들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당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도 권력이라고 집착한다면 정치적으로 퇴출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유한국당은 늘 이러한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 눈감고 넘어가는 바람에 망한 겁니다. 당을 혁신하고 재건하려면 구성원들의 절실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제1야당입니다. 야당답게 전열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라는 글을 남겼다.

혁신과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건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이 직면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그러나 절실함과 치열함의 방향이 틀렸다. 혁신과 개혁의 전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책임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이에 대한 성찰과 고민 없이 혁신과 쇄신을 말하는 건 대단히 비겁하고 위선적인 기만행위일 뿐이다. 이율배반이 제1야당 재건의 시작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쩌면 지금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게 필요한 건 외부를 향한 공세적 비판보다 스스로와 자유한국당 내부를 향해 던지는 치열한 문제인식일지도 모를 일이다.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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