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지 지난 6월 10일로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정권초기 재계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인 가운데 재계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새 정부 인사들이 '재벌개혁이 경제민주주의다'라며, 재벌에 대한 쓴 소리는 물론 개혁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다, 과거 정권처럼 조만간 사정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창출 등 새 정부 경제공약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조만간 사정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는 걱정에 좌불안석이라고 한다. 

매번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사정 기관을 동원한 ‘대기업 군기잡기’는 있어 왔다. 앞선 박근혜 정권 초기 CJ를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줄줄이 불려 나가 조사를 받은 뒤 법정에 섰다. 

새 정부에서도 시기의 문제일 뿐 사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별 기업들은 첫 타깃이 어느 기업이 될지 대관 라인을 총동원해 사정기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곧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대통령이 지시한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도 관심거리이다. 

청와대 김수현 사회수석은 “명백한 위법·불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후속조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국정농단의 후유증을 털고 재도약을 모색하는 재계는 기업들에 대한 잘못된 신호가 수출과 소비심리가 서서히 살아나는 상황에서 투자 등에 악영향을 주진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재벌들은 국가경제를 떠 바쳐왔다며, 과히 이 땅의 애국자로 대우를 받았다. 정격유착의 아름다운 사교는 정권들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을 정점으로 기고만장의 황금시대를 누렸던 것도 사실이다.

재벌들의 비리는 수감돼 법정에 출두할 때 마스크를 끼고 휠체어를 타면 한국경제성장의 공로로 무마되고, 이 처럼 재벌은 항상 무풍지대에 사는 마술사처럼 여겨졌다. 물론 새 정부도 고뇌의 칼부림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재벌에 대한 국민의 원성을 외면하기엔 재벌들의 죄 값은 너무 악질적이다.

이제 우리는 재벌의 개혁 없이는 우리경제는 무너질 것이다. 없는 자들을 노예정도로 생각하는 악덕의 극치가 더 이상 재벌들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겸손과 양심과 윤리가 사라진 세상은 무너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나라가 노쇠한 늙은 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악덕기업들은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 그들의 비리를 더 이상 묵인해서도 안 된다.

최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고발을 당했거나, 국세청 조사를 받은 기업들이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한 거래를 일삼은 기업으로 적발됐을 경우 차례로 사정권에 오를 것으로 보여 진다. 이들 기업오너와 경영진들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개혁을 위해 세무조사 등 전방위적으로 지속될 경우, 경영의욕이 저하되고, 투자가 위축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며, “매 정권초기 때마다 세무조사로 재벌 길들이기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우리상황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재벌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재벌들은 탄생에서부터 민주주의와는 친화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벌들은 독재체제의 최대 수혜자였고, 민주화의 최대 걸림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의 산업화는 정부에 의한 재벌육성이었고, 농민과 노동자는 ‘先성장 後분배론’의 희생양이었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 공권력과 재벌들은 근대 산업사회의 기본권인 노동3권을 유린해왔다. 

기업에 대한 특혜는 총수일가들에게까지 이어져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법 앞의 평등’을 짓밟아 놓았다. 지금도 정경유착이라는 적폐의 중심에 재벌들이 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편법상속을 통해 소위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면서 봉건귀족에 버금가는 신분이 형성되는 갑질 행위로 그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성장이 지연되고 국민경제의 일자리창출능력이 위축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불안이 고조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마저 발생하게 된다. 

불평등해소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권고한 최저임금인상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반대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전국에 30만개 가맹점에서 월매출 5000만원에도 수익이 1원도 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는 높은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본사의 수탈적 ‘갑질’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재벌의 하청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도 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와 같은 횡포로 지불능력이 크게 약화되어 종업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벌개혁을 통해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어야 비로소 중소기업에서도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일자리위원회가 계획하듯이 임금보조를 통해 중소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떨어뜨리고 재벌기업에 의한 수탈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빌미가 될 수 있다. 재벌개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 현실에서 시장은 경제학원론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되는 독과점시장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 독과점시장체제 하에서는 재벌들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에서 “시장 친화적 재벌개혁”은 “재벌 친화적 재벌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무중력 공간이 아니라 제도와 관행의 촘촘한 망이라면 재벌개혁은 이 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경제민주주의에 부합되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실사구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정농단의 기억이 생생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지금이 아니면 구조적 재벌개혁과 경제민주주의는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벌개혁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재벌개혁이 곧 경제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조승현 대기자/총괄사장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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