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탈 원전을 기치를 내걸고 원자력발전소를 점차 없애나가면서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석탄·화력발전소도 축소할 방침인 가운데, 부족한 전력공급을 러시아 전기를 수입해 충당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국경을 초월해 전력생산과 배전, 송전, 소비 등의 시스템을 공유하자는 이른바 ‘동북아수퍼그리드' 시대의 비전이 이미 공유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시장논리에도 맞지 않는 발전 사업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윤성학 교수는 최근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부족한 전기를 한국에서 생산하려고 하지 말고 발전자원이 풍부해 전기 값이 싼 러시아에서 사와서 쓰면 경제적, 환경적, 외교안보적, 정치적, 미래적으로 모두 유리하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윤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 특히 극동러시아는 발전원가가 공짜인 수력이 풍부하다. 최근 러시아 수력발전소는 수요 부족으로 가동률이 상당히 낮다. 게다가 러시아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 대국으로, 시베리아와 사할린에서 생산된 가스는 수천 킬로미터 가스관을 따라 블라디보스톡으로 집결, 가스발전소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윤 교수는 "액화와 기화가 필요한 액화천연가스(LNG)와는 달리 파이프라인천연가스(Pipeline Natural Gas, PNG) 는 그대로 연료 사용이 가능하고, 한국 가스발전소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먹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가 북한에 공급하려는 전력공급가격은 1kWh 당 0.05달러(57원)인 반면, 한국 발전소가 한전에 공급하는 가격은 87원"이라며, "러시아의 전력 요금도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가스발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는데, 발전용 가스 수요가 늘면 당장은 유례없는 가격 폭락으로 문제가 없지만 최근 매장량 기준 세계최대 천연가스 대국인 카타르 사태 등 지정학적 문제가 발생하면 가격이 폭등, 발전단가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스 수입을 전량 LNG로 하고 있는 한국은 가스 값 폭등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한편 가스발전을 위해 액화한 천연가스를 다시 기화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 효율이 떨어지고 원가요인도 추가된다는 것이다.
 
가스발전 역시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한국이 가스발전과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러시아 전기를 수입, 경제와 환경은 물론 외교안보와 국내정치, 미래 등 5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자는 것이 윤 교수의 포부다.
 
● 윤성학 교수, 한국이 러시아 전기를 사오는 방법을 2가지로 제시
 
우선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을 통해 전기를 받는 방식. 북한이 전력선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전력선으로 제공 받는 전력 중 일부를 북한에 공급해준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반영하면 사전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복안이다. 윤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한국 간 전선을 차단하면 자신들도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도록 설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이런 ‘전기길 제공 조건부 전기 나눠 쓰기 남·북·러 협력 프로젝트'를 끝내 뿌리치고 고집을 부린다면, 이미 전라남도 진도에서 제주도로 공급하고 있는 해저전선을 이용한 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육상 송전보다 설치비용이 몇 배나 비싸다는 난점이 있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하는 경기부양책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면서 "HVDC의 장점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를 HVDC 방식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단기 경제성 개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물인터넷과 스마트그리드 등이 일상화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실적인 전제조건이 된다는 게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러시아 전기가 한국에 들어오려면 일단 송전선이 교류가 아닌 직류가 돼야 한다"면서 "직류 송전은 2000km 이내에서 전력 손실율이 제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또 "직류 송전은 양방향 송전이 가능하고 전력과 정보를 결합, 스마트그리드의 길을 열어준다"면서 "게다가 고주파도 발생하지 않고 전선 지중화에도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이지만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셰일가스를 더 팔아먹으려는 미국이 이런 한·러의 ‘꽃놀이패'를 잠자코 내버려두겠냐는 것이고, 한국내에서도 한국전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윤 교수는 "카타르 사태 등을 보면 이미 한국에 셰일가스를 팔고 있는 미국이 물량을 더 밀어 넣기 위해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내적으로도 전력수급 및 가격통제권 상실을 우려한 한국전력의 저항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그러나 "친환경적 에너지구상을 밝힌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우선 시장논리를 거스르는 전력수급정책의 부당성이 폭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남·북·러 경협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동아시아평화, 동북아그리드를 통한 지역평화협력구상을 구체화하려는 큰 그림을 제시하면 국내(정치)는 물론 주변국들도 크게 호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유럽이 오랜 분쟁과 대립을 딛고 하나의 정치경제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석탄과 철강 산업을 공유하면서 부터"라면서 "손정의 회장이 몽골의 태양광 전기를 사서 쓰려는 것은 유럽연합(EU)의 이런 업적을 동북아슈퍼그리드로 다시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 윤성학 교수, ‘북방에서 길을 찾다’저서 통해 자원·에너지 신북방전략 제시

윤성학 교수는 ‘북방에서 길을 찾다’라는 저서를 통해 자원·에너지 신북방전략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6년 남·북·러 전력연계, 일본과의 에너지 브리지 사업을 포괄한 아시아 ‘에너지 슈퍼 링(Energy Super Ring)’ 전략을 제시했다면서, 장기적으로 남북한과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 통합전력망을 주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러시아는 이미 북한에 전력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일본을 잇는 해저송전망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과는 사할린과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경유하는 남·북·러 전력망 연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젝트가 2005년 처음으로 제기되었을 때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라는 신기술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고 나아가 러시아의 발전 능력도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HVDC 기술이 급속도로 상용화되었고 러시아는 최대 수력발전소인 부레야발전소를 신설하면서 공급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국은 더 이상 반환경적인 발전소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러시아의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전력을 수입하여 북한과 한국이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며 상업적으로도 다자간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부여한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한국은 대륙을 연계하는 에너지 수급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은 에너지 수입원 다변화와 경제성 담보, 그리고 통일비용 감소를 위해서라도 남·북·러 전력망 연계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은 북한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통해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고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러 전력망 연계사업이 현실화되면 관련 국가들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러시아의 저렴한 수력발전 전력을 수입하여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피할 수 있으며 비싼 에너지자원을 수입해 가공하는 과정에서 환경파괴 문제도 피할 수 있게 된다고 피력했다.
 
러시아 전력을 kWh 당 0.05 달러 정도에 수입하면 한국은 전력 원가를 10~20%정도 낮게 수입하게 된다며, 러시아도 원가가 저렴한 수력 발전에 의한 전력 수출을 통해 극동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향후 중국과 일본 시장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 그리드 조성에도 유리한 환경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대적으로 전력이 부족한 북한의 경우, 러시아 전력의 한국통과 비용으로 필요한 전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러시아 전력을 손쉽게 구매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면서, 북한은 러시아 전력의 자국 통과를 조건으로 그에 해당하는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윤 교수는 남·북·러 전력계통이 연계될 경우에 한국은 전력계통 측면에서 고립된 섬 상태를 탈피하고 남·북 경제협력과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주도하여 아시아 슈퍼그리드가 현실화될 경우 전력망 광역화를 통한 공급신뢰도 제고와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은 물론이며, 한국이 동북아 다자간 협력을 선제적으로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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