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거리로 ‘갑질’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가 ‘갑’과 ‘을’로 나눠졌는가를 생각해 본다. 사주에서 천간(天干)의 10개의 시작이 갑(甲)부터 출발해 열째 천간 계(癸)로 끝난다. 다시 말해 나무로부터 시작해서 가랑비로 끝이 난다.

갑은 시작이고 계는 끝이지만 돌고 도는 사주의 흐름으로 볼 때 꼭 그렇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갑과 을은 오행으로 볼 때 목(木)이다. 목이란 것은 청렴결백하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며 순수하다. 갑이 좀 저돌적이라면 을은 그것을 받쳐주워 서로 화기롭게 양분하여 나뉘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목(木) 사주(四柱)가 알고 보면 시작이라는 근원이 되며, 사주를 배우는 첫 단계에서이다. 말하자면 화(火)사주는 병(丙)과 정(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다른 건 고만두고 왜 갑과 을 관계만 그렇게 우리사회에서 명색을 지워질까 하고 의문을 재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그런 갑다 라는 정도이고 ‘갑질’을 했으면 미안하고 ‘을질’을 당했다면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사회구조적 암시를 표준화 했다. 항공모함에서 파일럿은 갑이고 뒤에서 기름 넣어주는 사람은 을인 것인가?

언젠가 변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는 서로 수직관계가 아니고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계성을 말했는데, 요즘에는 갑은 파워를 나타내는 사람이고 을은 그 파워나 힘을 받아주는 사람으로 받아주는 사회가 이해할 수 없는 고정된 관계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주택이나 부동산을 사는 계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전문용어가 사회일반화로 변한 것은 모두가 고학력 전문인이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주 명리학에서 갑은 어쩌면 잠시 나타나는 형태이기도 하고 갑이 두 개이거나 세 개가 되면 오히려 갑의 권위나 명예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갑이 많은 사람은 항상 바쁘다고 말해주는 일이 간명에서는 이뤄지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을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을이 두 개 있으면 이것도 별로 좋지 않다. 갑질을 을(乙)이 계속 받아주면 자기주체성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정신적 피해의식도 괴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을이 세 개인 사람은 어떠하냐고 묻는 다면 “볼 것도 없다” 하고 말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인간들이 문명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차서(次序)이다. 즉 둘 이상의 것을 각각 선후(先後)로 구분하여 하나씩 벌여 나가는 순서를 말한다. 

아마 유교에서 말하는 차서는 도덕이며 인륜이다. 나라에 임금이 있고 가정에 아버지가 있고 형제에 큰형이 있으며 나라는 존재는 다만 그러한 질서에서 순응하는 존재야 말로 인격수양과 질서가 형성된다는 뜻으로 우리사회는 받아들여졌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이러한 질서나 순응 또는 인간적인 도리라는 말들이 들어가고 개성적인 전문적 사회를 추종하면서 모두가 갑이고 모두가 을이 아닌 것처럼 형성된 구조를 이상적인 생각으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물건을 던졌으면 받아주는 사람도 있어야 물건이 온전하듯이 삶이나 인간의 생동하는 창의적인 집단에서도 수평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평등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평등과 민주 또는 평화 이런 말에는 그보다 더 깊은 책임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이 ‘갑질’이라고 하는 것만 따져서는 안 되고, 갑질이 조화로운 관계성으로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성을 말해야 한다. 갑질이 잡질(雜質)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갑도 을도 또는 병도 정도 모두가 자신의 분별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다양성과 전문성으로 봐야 한다. 옥수수는 옥수수 나름 역할이 있고 감자는 감자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감자가 “옥수수는 너는 좋겠다. 그 멋진 수염을 바람에 날리고 한량처럼 저녁노을을 바라보니.” 하고 말할 때 옥수수는 말할 것이다. “비오고 바람 불고 태풍 불 때 나는 감자가 차라리 속편하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보았다. 고로 갑이든 을이든 제 역할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칼럼니스트 명리이론가 정은광 박사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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