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라이프 문화/예술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에 얽힌 사연

어머니와 내가 육신으로 맺었던 인연은 불과 스무 달입니다. 그것도 뱃속에서 열 달, 태어나 배 밖에서 열 달이 고작입니다. 짧아도 어찌 이렇게 짧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8개월쯤 되었을 무렵,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했고, 나의 고향 김천 상좌원 마을에도 인민군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주민들은 황급히 봇짐을 싸서 피난길을 떠났는데, 우리 가족은 마을에서 약 10km 가량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의 산지기집으로 피난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만삭의 무거운 몸으로 산언덕 길을 힘겹게 걸어올라 냉기 가득한 방안에 누우셨을 것입니다. 산중의 피난살림이라 영양보충인들 제대로 했을 리 만무하고, 그저 끼니조차 때우기가 버거웠을 것입니다. 1950년 8월 초순, 삼복염천 피난살이 산지기집에서 나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플리커/권태훈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는 기어이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고향집에 돌아와 이듬해 5월, 뻐꾸기소리가 서럽게 들리는 날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임종하시던 날, 젖먹이였던 나는 안방 윗목에 잠들어 있었고 가족들은 아랫목의 어머니 둘레에서 흐느껴 울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맥없는 눈빛으로 당신의 남편에게 이렇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위로 셋은 계모 설움 안 받도록 잘 보살펴 주셔요. 저 어린 것은 곧 제 뒤를 따라올 것이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곧 당신을 따라올 것이라던 막내가 어머니를 뒤따르지 않고 60여년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육신의 숨이 끊어진 뒤에도 윗목의 어린 젖먹이가 눈에 밟혀 분명 저승길을 홀가분하게 떠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막내의 주변에서 맴돌며 마치 살아계실 때처럼 이것저것 보살펴주시며, 위험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시며 항시 지켜주셨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불과 열 달 만에 어머니를 잃어버리고도 이날까지 무탈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넋이 내 주변을 감싸고 맴돌며 호위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50년 12월 19일 대구역 앞에서 한 어머니가 국군 신병으로 전선을 향해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고 있다. ©플리커/대한민국 국군

내가 1973년 시인으로 문단에 나와서 오늘까지 15권의 시집을 내었는데,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어머니를 테마로 다룬 작품이 상당수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란 세 글자는 나의 영원한 문학적 화두(話頭)입니다. 소년시절에는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눈물도 많은 섬약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불혹(不惑)이 넘으면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이래로 한국가요사를 통틀어 가장 절절히 사무치는 노래 한 곡을 고르라면 나는 ‘불효자는 웁니다’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 노래의 가사를 눈으로 따라 읽으며 잔잔히 곡조를 흥얼거리다 보면 내 눈가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못 다한 정성과 효도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좋아하고, 또 부르면서 흐느껴 우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른 가수 진방남 ©이동순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 진방남(秦芳男, 1917~2012, 본명 박창오)은 연전에 세상을 떠난 작사가 반야월(半夜月) 선생의 가수시절 이름입니다. 일제말, 마산 출신의 그는 서울의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되어 오래도록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하다가 일본으로 이 노래를 취입하러 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틈을 내어 하직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가랑비 뿌리는 기차역까지 일부러 따라오셔서 먼 길 떠나는 아들을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일 뒤 일본에서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 취입을 불과 두 시간 앞두고 ‘모친별세’란 청천벽력 같은 전보를 받았습니다. 이 무슨 기가 막힌 운명의 장난인가요? 목이 메어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중에 겨우 호흡을 가다듬은 진방남은 녹음실로 들어가 이 노래를 취입했습니다. 원곡을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흐느끼는 듯한 대목도 들려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바쁜 일상에서 살뜰히 챙겨드리지 못한 부모님을 찾아뵙고, 오늘 만이라도 깡마른 그 손을 잡아드렸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가슴에 껴안아 드리고, 그러다가 냉큼 등에 업고 집안도 한 바퀴 돌아다녀보십시오. 여러분께서는 부모님 체중이 어쩌다가 이렇게도 종잇장처럼 가벼워지셨냐며 분명 세 걸음을 못 딛고 발끝에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sundaykr@daum.net

<저작권자 © 선데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