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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가권력남용자들이여! 권부오년(權不五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 김쌍주 주간

이렇든 저렇든 우리나라의 모든 중심은 청와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4대 권력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이 중심지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울은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물론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민감해하는 국정감사 기간을 앞두고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구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수수금지에 관한 법, 일명 김영란법 시행과 최순실 사태 이후 후원금이 줄어들자, 국회의원들이 보좌진을 통해 노골적으로 기업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최근 야당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이 기업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기업의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를 조사하고 있다며, 공정위에 오너 일가 지분율 변화에 대한 자료를 요청을 했다고 하면서 후원금 이야기를 꺼내더란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공정위에 확인해본 결과 그 의원실이 공정위에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 사실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국감기간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 기업의 심리를 국회의원들이 철저히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권력기관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식을 기업에 채용토록 청탁을 하는가 하면,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자나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법을 어기면서 부동산투기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일, 이명박·박근혜 2대 보수정권의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교육현장에서부터 하도 많아 모두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국가권력남용의 문제점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자유를 정당하게 제한할 수 있는 태풍이나 자연재해, 전쟁이나 경제위기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공동체를 위해서 시민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제한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제한의 범위는 반드시 법으로 정해야 하며, 그 내용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권력남용은 공정한 혜택의 배분과 자발적 협력의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소외계층의 불만이 가중되어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된다. △국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통한 사회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다양성과 관용이 존중되지 않아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풍토가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수 있으므로 국가권력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한은 필수이다.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민은 국가가 계약대로 권력을 자신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하는지 적절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로크의 저항권, 루소의 혁명권처럼 말이다.

맹자는 민본주의적 역성혁명을 통해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는 패역한 정권교체는 정당하다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삼권 분립, 즉 국가의 권력을 삼권으로 나누어 상호견제하게 했다. 그 외에도 인권단체나 사회운동단체, 환경단체 등 각종 시 단체들도 각 단체의 목적과 역할에 따라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덕성여대를 가다보면 그 옆에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선말의 풍운아 대원군 이하응의 저택이던 ‘운현궁’과 마주치게 된다. 당시 대원군이 없었다면 12살에 불과한 고종이 결코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원군은 어린나이 12살에 왕이 된 아들을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했었다. 대원군은 권신들에 의해 추락한 왕권을 회복하고 세도정치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그의 개혁정치는 과감한 결단력과 정치력이 없었다면 아마 추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서원의 부조리와 부패현상을 보면서도 개혁군주 소리를 듣는 현군 ‘정조’ 대왕조차도 손을 못 댄 서원철폐를 단행한 대원군 이었다.

그러나 그의 개혁정치는 당시의 서양세력이 몰고 오는 태풍을 견뎌낼 수 없었고, 왕권강화를 위한 경복궁 재건은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어 개혁정치를 탈색시키고, 집권 10년 만에 그는 아들 고종의 친정 선포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어느 왕도 왕이 아닌 대원군 이하응만큼 강력하게 권력을 행사하지 못 했다. 그의 강력한 권력행사도 1863~1873년 아들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기까지 10년 세월에 그치고 오십에 불과한 나이에 타의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대원군이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절 운현궁 일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의 위세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한가로운 시민들의 발걸음이 잠시 머물며 옛 시절을 회고하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그를 보면 이 세상 어느 것도 내 것이 없음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국가권력을 가진자들이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나보다 못한 국민을 업신여기거나 압제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직시하게 될 것이다. 무릇 살아 있는 국가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모두들 이곳 운현궁을 한 번쯤 다녀갈 것을 권한다. 침묵 속에 운현궁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올 것이다. 

국가권력을 가진자들이여! 업무가 바빠서 시간이 없어 갈 수 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 때 권력을 잡고 뒤흔들었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국가권력을 남용하면 어떤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전자시대다. 투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권부오년(權不五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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