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이여!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되길”

7월이 왔다. 온갖 행사들로 가득 찬 계절의 여왕 5월과 현충일, 육이오, 유월항쟁 같은 호국과 민주화투쟁의 흔적이 역력한 6월을 보내고 맞는 7월은 그래서 어딘지 조금 한산한 느낌이다. 학교들이 방학을 하고 본격적인 여름 바캉스시즌이 시작되는 정도.
하지만 7월은 조용히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는 달이다. 시끄러운 5월과 아픈 6월을 산고처럼 겪고 비로소 새로운 것을 움틔우는 계절, 그래서 7월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의 외진 사막에서 최초의 핵무기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조기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이 36년간의 일본압제로부터 벗어나는 결정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1950년 7월 7일, 유엔 안보리 7개 회원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의 창설에 찬성하면서 한국전쟁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에서 보내온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마지막 사력을 다하고 있던 한국군을 도와 북한을 38선 이북으로 밀어내고 실토를 되찾았다.
1972년 7월 4일, 해방 후 계속 대치상태로 있던 남북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무려 200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을 치루고 155마일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남북이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후 지금까지 이루어진 남북교류는 모두 이 7.4남북공동성명을 근거로 하고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의 이념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남북 모두 거부할 수 없는 대명제기도 하다.
이렇듯, 7월은 우리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일들이 일어났던 달이다. 근래에 들어 7월은 또 다시 새로운 의미를 간직하게 됐다. 4년마다 개최되는 지방총선거를 거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새로이 문을 여는 달이 7월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17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32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있다. 그리고 3631명의 지방의원들이 있다. 이들이 지방살림을 꾸려간다. 국민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서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를 하기 위해 지방자치가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구의원-시의원-구청장-시장 또는 국회의원. 최근 등식화된 부산의 정치인 순열이다. 위계의 배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나가기를 지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 상당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 부산 16개 구청장 중 시의원 또는 구의원 출신이 절반이 넘는다. 시의원 중의 상당수는 구의원 출신이다. 현 서병수시장 또한 구청장 출신이다.
시·구의원 출신이 구청장을 하고 나아가 시장을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대개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오랫동안 살아온 시·구의원들은 지역실정을 훤히 알고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해묵은 지역의 고질병들을 과감하게 혁신하는 열성을 보인다. 지방의회의 설치와 민선구청장제도가 시작된 1995년 이후 부산의 16개 구군은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지방자치가 시작되기 전, 관선구청장은 대개 그 지역 출신도 아닌데다가 언제든지 인사명령에 의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지역보다는 어쩌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장에게 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처지에서 구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시장과 맞붙을 수 있는 관선구청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동남권신공항을 두고 영남이 둘로 쪼개어져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전투구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기 지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모습이니까. 옛날 관선 도지사시절 같으면 어떻겠는가? 정부가, 대통령이 ‘어디’라고 결정지으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방자치와 민선제도는 반드시하고 해도 좋을 만큼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그리고 부산의 지방자치단체. 20%도 되지 않는 재정자립도,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인한 과도한 예산지출, 인사교류가 정체된 탓으로 점점 무능해져 가는 공무원들, 표로 심판받아야 하는 민선이기에, 어쩔 수없이 다양한 이익단체의 압력에 흔들리는 행정,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부산의 지방자치단체들은 흘러가고 있다.
30년간 부산시의 공무원으로서, 시 본청과 4개 구를 두루 돌며 체험한 것들을 이제 지면을 통해 피력해보고자 한다. 부산시와 16개 구군의 공무원들은,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대선배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마뜩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 망설임 끝에 펜을 든다. 그리고 후배공무원들에게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가 메기가 되겠다”고.
어떤 사람이 미꾸라지를 키웠다. 커다란 수조에 넣고 사료를 듬뿍 주어 미꾸라지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을 별로 찾지 않았다. 미꾸라지 살이 퍼석해서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편안하게 주는 먹이만 먹고 늘어져서 그렇습니다.”
전문가의 진단은 그러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운동을 하게 해야 합니다. 양식보다 자연산 생선이 맛있는 이유는, 자연산 물고기들의 운동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말이 주인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미꾸라지를 운동시킬 방법이 없었다. 막대기를 수조에 넣어 휘저으면 미꾸라지들은 그때 잠시 꿈틀거리고는 다시 진흙 속에 파묻혀 움직이지 않았다. 팬을 넣어 물을 휘저어도 두터운 진흙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물의 흐름에 저항했다.
“미꾸라지들은 다 어디 있지?”
손님들은 늘 텅 비어 있는 수족관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은 난감했다. 미꾸라지들은 원래 헤엄치는 물고기가 아니다. 아니 원래는 헤엄을 쳤지만, 너무 오랫동안 헤엄을 치지 않아서 헤엄을 칠 때 필수적인 지느러미도 거의 퇴화해버렸다.
“메기를 사용해 보십시오.”
다시 찾은 전문가는 그렇게 조언했다. 그래서 주인은 미꾸라지가 든 수조에 메기를 한 마리 넣었다. 메기는 진흙바닥을 뒤져 미꾸라지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미꾸라지들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진흙바닥에서 나와 작은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족관은 늘 헤엄치는 미꾸라지들로 가득해졌다.
“살이 쫄깃쫄깃한 게 아주 맛있네!”
손님들은 헤엄치는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을 먹고는 하나 같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비록 일부 미꾸라지들이 메기에게 잡아먹히기는 했지만, 미꾸라지들의 바뀐 체질이 만들어낸 좋은 맛으로 주인은 많은 돈을 벌었다.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다. 미꾸라지에게 비싼 사료를 주는 주인은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 주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 미꾸라지인 공무원들은 좋은 맛을 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도 가만 내버려두면 진흙 속으로 파고드는 미꾸라지들처럼 한없이 늘어지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메기가 필요한 것이다, 싫어도 진흙바닥에서 기어 나와 움직이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이규호 칼럼니스트 양력
경남 진주출생
진주고, 육군사관학교 34기
프랑스 그래노블대학교 석사
부산시 감사관
부산시 부구청장(남구,부산진구)
부산 문인협회 부회장

이규호 전문위원 sundaykr@daum.net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