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국내 정유업계가 정제 마진 호조에 힘입어 장기적인 호황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경쟁 정유 업체들의 설비폐쇄와 정기보수 등에 따라 생산량이 줄어드는 반면, 미국의 인프라투자증가와 저유가 기조에 수요는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제유가가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뒷받침될 경우 구조적인 호황을 누릴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중동 산유국들의 지속적인 감산합의이행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요동칠 경우 호황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유 업계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2.4분기부터 정제마진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몇 년 동안 지속된 저유가로 설비증설이 주춤 한데다, 최근 미국의 정제설비 가동률이 낮아지는 등 생산량 축소가 예상되지만 가격 하락은 물론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이후 경기 회복기대로 인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다가 최근 다소 주춤하고 있다. 유가가 계속 오른다고 해서 국내정유사들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유가상승은 정유‧화학업체들에는 플러스요인이다. 재고평가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고평가이익이란 미리 사놓은 원유가격이 구매당시보다 오르면서 재고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OPEC감산합의 이후 국제유가시장을 보는 시선과 동향을 본보 선데이저널이 취재해 봤다. 
  
얼마 전 국내 정유사 직원으로부터 하소연을 들었다. 유가가 오르면서 국내휘발유 값이 상승하고 있는데, 기름 값이 오를 때마다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여론이 대두된다는 것이다. 

정유 업계는 “정유사는 원료와 제품가격의 차이인 ‘정제 마진’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판매가격이 높다고 해서 정유사의 이익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자주 듣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일주일새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지난 3개월 간 국제유가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만 해도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45.42달러이던 국제유가는 3월 1일엔 배럴당 55.13달러로 올랐다. 

두바이유가격은 지난해 12월 배럴당 50달러 선에 올라선 이후 3월 14일 현재 51.35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가가 이렇게 오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꽤, 잘 지켜지는 OPEC감산합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해 11월 30일 정기총회에서 전체 원유 일일생산량을 3250만 배럴로 감축하는 데 최종 합의했다. 지난해 10월 원유생산량인 3364만 배럴보다 114만 배럴 줄이는 수치다. 

OPEC의 최종 감산합의가 미치는 영향은 컸다. 그해 12월 10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OPEC-비(非)OPEC 장관급 회담에서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멕시코 등 비OPEC 산유국들이 감산 공조에 참여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당초 에너지업계에서는 OPEC 회원국들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이 생산쿼터를 엄격하게 지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내다봤다. 1․2차 석유파동이후인 1984년부터 2011년 전후를 살펴보면 당시 OPEC의 생산쿼터와 산유량을 비교했을 때 각 국가들이 생산쿼터를 제대로 준수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은 저유가로 인해 재정적자 와 정세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들이 재정손실을 메우기 위해 생산쿼터를 위반할 거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OPEC감산합의는 꽤 잘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1월 산유량을 집계해보면 지난해 감산에 합의한 OPEC회원국은 감산목표량의 90% 이상 을 달성했다고 한다.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수치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올해 2월 영국 런던에 서 열린 회의에서 “모든 회원국이 높은 수준으로 단결하기 위한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감산 이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감산합의로 웃음 짓는 정유 업계는 OPEC감산합의 당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주요 산유국이 감산을 하게 되면 유가가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유 업계에서는 당시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가 최저 마지노선수준이 될 것이고, 2017년엔 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감산합의로 인해 유가가 오르긴 하겠지만, 미국에서 원유재고가 늘고 셰일오일 생산량이 증가하는 만큼, 유가가 과도하게 상승하진 않을 거라는 예상 이었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2월 미국의 원유재고가 5억1800만 배럴로, 1982년 이래 35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유가동향 을 살펴보면 당시 업계의 예측대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유가가 오르는 게 왜, 정유사들에 이득인 걸까? 국내에선 정유사가 원유를 구매하는 시점과 해당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시점 사이엔 한 달 가량의 시차 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가가 오르면 일명 ‘래깅(lagging) 효과’가 발생한다. 유가가 쌀 때 구입한 원유로 정제한 석유제품을 현재의 오른 가격에 팔 수 있어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물론 유가가 오른다고 해서 정유사가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유가가 급등하면 석유제품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운임 등을 제외한 이익인 정제 마진은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정유 업계는 감산합의 당시 정제 마진이 일시적으로 약세로 전환하더라도 다시 양호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겨울철을 맞아 난방유등 계절적인 석유제품수요가 있는데다, 2017년엔 미국과 중국 등에서 인프라투자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정제설비 증가규모에 비해 석유제품수요 증가량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정유 업계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고 하지만, 유가상승으로 인한 호재는 국내정유사들에 고민도 안겨주고 있다. 우선 휘발유가격이 상승함과 동시에 정유사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름 값 상승분으로 인한 이익을 정유사가 독식하고 있다”는 여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한석유협회는 관련보도에 대한 설명 자료까지 내고 “정유사의 공급가격인상 폭은 국제석유제품가격 상승폭보다 낮으므로, 최근의 유가상승이 모두 정유사 공급가격 인상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애써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석유협회에 따르면 실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주유소기름 값은 정유사들의 마진과 관계없이 주유소 간 시장경쟁 과업전략 등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소비자의 구매가격은 정유사들의 석유제품공급가격보다 1~2주 늦게 형성되지만, 국제석유제품가격이 상승하거나 높게 유지된다면 결국 국내석유제품가격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국내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정유업계로서는 높은 기름 값에 대한 따가운 눈총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정유업종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경제상황이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으면, 유가상승은 석유제품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 문이다. 

변수는 국제유가 변동 폭이다.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합의이행에 대한 의구심으로 유가가 하락할 경우 수익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OPEC의 120만 배럴 감산합의도 오는 6월까지 한시적이라는 점과 중동지역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추가감산합의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석유제품수요가 감소하면 정제마진이 악화돼 실적에도 타격을 주게 된다. 최근 정유사들이 유가 등 외부여건의 변화에 취약한 정유 사업 위주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화학, 윤활유, 배터리 등 성장성이 높은 사업위주로 구조를 재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정유 업계 관계자는"OPEC의 감산물량을 미국의 셰일가스가 상쇄하는 구도로 인해 OPEC이 하반기에도 감산합의를 연장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OPEC의 추가감산 합의가 불발할 경우 생산량 늘어나면서 유가가 하락해 단기적으론 지난 2014년처럼 시차효과와 재고평가로 인한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조승현 대기자/총괄사장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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