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대 금융사기 혐의자가 김해국제공항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는 범죄자가 동생 친구의 여권으로 몰래 입국했는데도, 공항 출입국 심사과정에서 전혀 걸러내지 못했다. 국가보안시설이라는 공항의 출입국관리가 이처럼 허술하고 엉터리일까 싶을 정도다.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100억 원대 사기대출을 받고 해외로 달아난 30대가 지인의 여권으로 몰래 귀국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여권의 실제 주인은 기록상 출국 한 번에 입국만 두 차례 했는데도 출입국관리사무소는 4년 동안 적발하지 못했다.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동생 친구의 여권으로 몰래 입국을 한 혐의(여권법 위반 등)로 조모(38) 씨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또 조 씨의 범행을 도운 동생(36)과 지모(36)·양모(38)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인터넷 쇼핑몰에 옷을 납품하던 조 씨는 가짜 납품계약서를 이용해 한 저축은행에서 118억8000만 원을 부정 대출받았다. 조 씨는 또 서울의 한 사업가에게 접근해 "의류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3%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6차례에 걸쳐 15억9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조 씨는 다른 금융기관을 상대로도 비슷한 수법으로 100억 원대 부정대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조 씨는 사기 행각이 들통 나 경찰수사가 진행되자, 2011년 2월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달아났다. 조 씨는 2년여가 지난 2013년 10월 동생과 동생 친구인 지 씨를 태국으로 불러들였다. 또 지 씨의 여권을 이용해 그해 10월 8일 인천공항으로 몰래 입국했다.

여권을 빌려주고 태국에 남은 지 씨는 현지 대사관에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거짓 신고해 여행지발급증명서를 발급받아 사흘 뒤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법무부출입국관리 당국은 지 씨의 여권으로 입국한 조 씨를 잡아내지 못한 데 이어 여권분실 신고를 한 지 씨조차 적발하지 못했다.

출입국 기록상 조 씨는 2011년 출국해 입국 기록이 없다. 남의 여권으로 입국한 탓이다. 여권을 빌려준 지 씨는 한 차례 출국에 두 번 입국을 한 셈이 됐다.

국내로 들어온 조 씨는 친구인 양 씨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 명의로 임대한 경남 김해의 빌라에서 외제승용차를 몰며 호화생활을 했다. 

올해 초에는 차를 몰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동생인 것처럼 행세를 했다. 은신처에 들이닥친 경찰관에게도 동생의 주민등록번호를 말했다.

경찰은 지 씨의 입국 기록이 이중으로 처리된 경위에 대해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출입국사무소 측은 "조 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입국할 수 있었는지 당시 업무담당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과실여부에 따라 징계를 하겠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의 허점이 드러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20대 여성이 남자 친구의 여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출국한 일이 발생했다. 부산항에서 출국심사를 무사통과한 이 여성은 일본 오사카 입국 심사장에서야 비로소 걸렸다. 

또 부산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중국인 유학생 1명이 여권도 소지하지 않은 채 크루즈선에 승선했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 무리에 끼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법무부는 공항과 항만 등의 출입국관리 업무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어떻게 동일인이 출국 1회에 입국 2회가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공항에 범죄자를 비호하는 협력자라도 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여성과 남성도 구별하지 못하고, 여권도 없이 무리에 섞여 우르르 빠져나가면 출국이 가능한 것도 놀랍다. 마치 후진국의 공항이나 항만을 보는 것 같다. 공항과 항만은 국가중요시설로 보안과 출입국관리가 생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다면 마약이나 테러, 밀입국 등 범죄를 예방하고 차단할 수가 있겠는가. 더 큰 보안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허술한 출입국관리 시스템을 전면 보완하고 관리감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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