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고속철도 테제베. 유레일 홈페이지 출처

우리에게 낯익은 세계적인 테제베(TGV)고속열차 제조사인 프랑스 알스톰사가 독일 지멘스사와 철도차량생산부문을 합병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26일(현지시간) 각각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인을 거쳐 철도사업부문 합병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도 합병 계획을 승인했다. 

이번 프랑스와 독일의 두 회사 간 합병은 세계 철도차량 시장의 약 5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 국유기업 중국중처(中國中車·CRRC)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합병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알스톰사의 강성노조 때문에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 프랑스정부도 합병승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알스톰사는 강성노조로 한때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었다. 귀족 강성노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다가온다.

테제베(TGV)는 한국의 1세대 한국고속열차(KTX)의 원조인 셈이고 프랑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독일 지멘스사와 합병하게 된 것일까?

프랑스의 고속철도와 고속열차 시스템. 테제베(TGV, Train à Grande Vitesse)는 ‘초고속 열차’라는 의미이다. 1982년 1세대 테제베(TGV)가 운행을 시작한 이래, TGV-A, 유로스타(Eurostar), TGV-R, TGV-POS, 아제베(AGV, Automotrice Grande Vitesse)등이 개발되었다. 

유로스타와 TGV-R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운영이 가능하도록 기능을 개선했으며, 이후 개발된 TGV-POS는 시속 320km의 운행 속도를 기록했다. 

이후 프랑스는 일본과 같은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AGV를 개발하여 이탈리아에 수출하기도 했다. 2세대 모델인 TGV-A는 한국의 1세대 KTX의 모체이다. 

● 사실상 독일 지멘스사가 지배하는 구조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알스톰사와 독일 지멘스사는 합병으로 신설될 회사 지분을 원칙적으로 50%씩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지멘스사는 설립 이후 2%의 지분을 추가 취득할 권리를 갖게 돼 사실상 지멘스사가 경영권을 갖는 구조로 짜일 전망이다. 신임 임원 11명 중 6명을 지멘스가 지명한다. 기업 이름도 ‘지멘스-알스톰’으로 확정했다. 2018년까지 통합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두 회사의 철도부문 매출은 151억유로(2016년 기준 약 20조원) 규모이며 종업원 수는 5만9990명이다. 통합 4년 뒤에는 4억7000만유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두 회사가 내세우는 합병의 표면적인 이유는 고속철 차량 생산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 업체 CRRC의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조 케저 지멘스그룹 회장은 “아시아의 지배적 플레이어가 세계 시장 생태계를 크게 바꿨다”며 CRRC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프랑스 언론들은 ‘강한 유럽’에 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의지도 이번 합병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유럽에서 ‘챔피언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사노피와 독일 아벤티스 의약부문 통합과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게 마크롱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는 특히 유럽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에너지와 수송 산업에서 미국과 중국에 대항할 만한 대규모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 프랑스 강성 노조와의 대결 측면도

고속철 테제베(TGV)를 생산하는 알스톰사는 프랑스의 대표적 기업이지만 2004년 정부지원으로 파산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3년 전에는 에너지사업부문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알스톰사는 강성 노조가 성장을 막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과 민주노동총연맹(CFDT), 노동자의 힘(FO)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조 단체는 모두 알스톰에 노조 지부를 두고 있다. 복수 노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노조는 기업 경영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키워 왔다. 기업 활동은 자연스레 위축됐고 매출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는 매출 부진을 겪는 알스톰의 벨포르 공장을 폐쇄하려 했지만 노조 반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 공장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데도 5억 유로의 고속철을 알스톰사에 주문하기도 했다. 노동개혁을 최고 과제로 선포한 마크롱은 이런 알스톰사의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지멘스사와 합병을 꾀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노조·극우 정치가들 반발

프랑스 알스톰사와 독일 지멘스사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알스톰사의 복수 노조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클로드 몽다르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 대표는 “(노조가) 지멘스와 모든 면에서 충돌을 빚을 것”이라고 했으며, 대니얼 드레거 CGT 대표는 “지멘스는 올해만 해도 1700명을 해고한 기업”이라며 “알스톰사에도 해고 바람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패트릭 드 카라 CFDT 대표는 “프랑스 정부가 고용 유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통합을 반대해온 극우 정치인도 거들고 나섰다. 대선 후보로 나왔던 니콜라 뒤퐁 에냥 공화국세우기 대표는 “테제베(TGV)는 결국 독일의 것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왜 이런 불평등한 합병을 받아들이느냐”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합병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기 위해서는 5~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우리 강성노조에 던지는 메시지?

얼마 전 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노사정위원회에 대통령 참석을 요구해 국민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노사문제가 우리경제의 중대 사안이긴 하지만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협상장에 국가원수를 호출한 의도가 의심스럽다.

대선 당시 민노총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도왔다하여 지분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상승, 통상임금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기업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정부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차원에서 경제단체들의 대폭 양보가 있었던 만큼 노조도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게 도리이고 국민의 뜻이다.  

양대 노총이 노동자의 권익수호라는 핑계로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계속 자신들이 속한 노조만의 주장을 펼친다면 테제베(TGV)고속열차 제조사인 프랑스 알스톰사가 독일 지멘스사로 넘어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귀족 강성노조의 사업장들의 임금은 이미 국민가처분소득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일로 넘어가는 프랑스 테제베(TGV)의 운명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닥친 북 핵으로 인한 긴박한 안보 상황만큼이나 어려운 국가경제를 살리는 일도 시급한 당면 현안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도 중요하지만 고용안정이 우선이란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강성·귀족노조의 이기적인 행동은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결국엔 자신들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파산의 선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귀족·강성노조들은 노사관계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등을 돌려버린 국내 귀족·강성노조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교훈을 잊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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